어렸을 적부터 몸이 더럽게 약했다.
병원 신세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병원이 그냥 내 세계의 전부였다.
간간히 병문안을 오던 기니안과의 대화만이 나의 더럽게 지루한, 유년 시절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말을 하다가 각혈을 해도, 어느 날 갑자기 잠에서 깨어 눈을 떠 보니 블랙 아웃 현상이 1시간 이상 지속되었을 때에도, 아. 그래도 이렇게 태어난 걸 어쩌겠어. 하며, 오히려 어렸기에 다른 마음을 품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행복이라는 선택지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행복을 맛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마음을 품을 수 없었다.
내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 즈음. 여전히 학교는 등교하지 못했고, 홈스쿨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걸.
그냥, 병원 VIP 1인실에서 방문교사랑 최소한의 공부를 하던 때였다. 우리 집은 돈이 많으니까, 이런 돈지랄도 가능했거든.
"교재 2장 144p 3번째 줄 5번째 단어까지가 20xx년 x월 xx일 오후 3시 27분에 말씀하셨던 파트에요."
내가 그렇게 말했다. 교사가 놀랐다.
단어 선택 때문이냐고? 그럴 리가. 요즘 애들 얕보지 마라.
기억 능력 때문이었다.
완전 기억능력, 이라고 하면 좀 오글거리지만, 아마도 나는... 태어날 때, 신체 상태에 비례한 두뇌 회전을 얻은 모양이었다.
방문교사는 부모에게 "아이가 기억력이 아주, 아주 좋아요."라고 말했고, 그렇게 내 '재능 발휘'가 시작됐다.
기니안... 아니, 기니안 아스트로파가 방문이 뜸해진 건 아마 이 때 즈음 부터였을 거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기니안은, "나, 축구를 시작하게 됐어. 애들이랑 다 같이. 즐거워. 학교에서 내가 여동생이 있다고 하니까, 다들 보고싶다고 했어. 너랑 같이 학교 다니고 싶다."라고 했다.
아마 그 때부터 기니안을 '눈치없는 개새끼'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즈음, 원래부터 돈이 썩어넘쳤고- 연줄이 탄탄했던 부모였어도, 슬슬 병원비를 충당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는지 내 재능을 언론에 팔아먹었다. 나는, '천재 병약소녀'정도로 포장되어 나갔다. 물론, 내가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던- 각혈하고, 무너져 내리는 모습까지 낱낱이.
내 능력은 의외로 쓸모있었나보다. 방송을 보고, 알음알음 수소문한 어떤 높은 사람이- 내게 자문을 구해왔다.
제대로 된 정규 교육과정조차 밟은 적이 없는데, 중학생 때부터 대단한 일을 시작한 천재 병약미소녀. 어때, 대단하지 않아?
나는 그들이 원하는 업무를 훌륭히 수행해냈다. 몇백 페이지를 외우고, 법정에 가 변호사를 도왔다. 이런 커리어가 한 번 쌓일 때마다, 내게 들어오는 오퍼가 더욱 많아졌다. 기니안과 부모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던 커다란 병실이, 복작거린다.
『축복받은 기억력』이라고 했다.
방송을 봤으면서.
내가 평소에,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지 알면서.
키는 140cm에서 더 자라지 않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항상 수액으로 연명한다. 피골이 상접했지만, 그래도 유전자 하나는 제대로 물려받았는 지 그 상태로도 꽤 봐 줄 만 한 얼굴이긴 했을 거다. 몸무게야... 뭐, 뻔하지. 존나게 가벼웠다.
이딴 능력이 축복이라면, 저 빌어먹을 기니안 아스트로파에게나 주지. 나는 원한 적도 없는데.
바보였으면 했다.
이딴 기억력 필요 없었다. 중학생 때부터 웬 수백 장 짜리 법률 용어가 가득한 법전이나 외우게 만드는, 사람을 인간 컨트롤+에프 기능으로 여기는 녀석들 따위 알 바 아니었다. 그렇지만, 정신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나는 나 자신을, 가둘 필요가 있었다.
중학교 3학년, 기니안이 고등학교 1학년에 진급했을 때, 내게 "호전되면, 우리 학교로 와 줘."라고 말했다.
가기 싫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가족이 있어야 변명이 편하겠지.
그래서 같은 고등학교에 가기로 했다.
"요즘 상태는 좀 어때?"
"천재에게 따르는 시련일 뿐이지. 궁도는 뭐...할 만 해?"
"...응, 재미있어."
같이 하자는 소리는 뒤지게도 안 해주네. 눈치 없는 새끼.
나중에 들었는데, 기니안 이 녀석은... 축구에 별 소질이 없었나보다. 빠르게 뛰는 것보다는 정적인 운동이 좋다나, 뭐라나.
여전히 개새끼였다. 그게 태어났을 때부터 병실이 마이 홈이었던 여동생 앞에서 지껄일 소리인가?
"요즘 하는 일이야?"
기니안이 내 무릎 위에 올려진 수백 장의 서류뭉치를 보더니 묻는다.
"어. 이번에는 좀 위험한 일."
"......조심해."
감히 걱정하고 자빠졌다. 지원받으면서 사는 너는 모르겠지. 이 빌어먹을 체질 때문에 집안에 빨대 꽂은 채로 태어난 내 처지를. 너는, 모르겠지. 어렸을 때 전국에 사연이 팔려서, 빌어먹을 두뇌 때문에 이딴 서류나 들여다봐야 하는 내 기분을.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기생충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미칠 것 같은, 나를.
"꺼져."
그러니 내 대답은 항상 같았다.
...기니안이, 자신의 학교 생활을 얘기 해 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좀 더 친했을까?
...네가, 나를 감히. 걱정하려 들지 않았다면......
"소용 없는 일이지."
기니안 아스트로파. 그거 알아?
나 있지, 이 망할 재앙 속에서도 살아남았어.
평소에 일을 열심히 해서 그런가? 국대도 못 딴 너랑은 다르게, 먼저 높으신 분들이 제안을 주더라. '알리나 양에게 VIP 대피소 입장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그래, 평소처럼 등가교환이야.
너는 어쩌고 있으려나? 그 활솜씨로 사람은 좀 구했니?
아니면, 그 지랄맞은 오지랖이 발동해서, 뭐... 죽겠다거나, 그러진 않을 거지?
부디 죽지 마. 기니안.
내가 너를 죽이기 전까지.